‘ 좋은 이야기’ 공부 - 재산을 놓아 두고 문만 지키다
본문
『 어느 부자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하인에게 문단속을 잘 하고 나귀와 밧줄을 잘 살필 것을 당부하였다.
주인이 떠난 후 이웃집에서 한 친구가 광대놀이를 구경가자고 그를 부르러 왔다. 그는 밧줄로 대문을 얽어 매어 나귀 등에 실은 뒤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후 곧 그 집에 도둑이 들어와 값진 물건을 모두 훔쳐 달아났다.
며칠 후 주인이 돌아와 보니 값지고 귀한 물건들이 없어졌다. 주인은 하인을 불러 물었다.
“집안의 값진 물건들을 모두 어떻게 했느냐?”
“주인께서는 저에게 문과 나귀와 밧줄만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그 밖에 다른 것은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
주인은 어리석은 하인을 꾸짖고 나서 말했다.
“너에게 문단속을 잘 하라고 한 것은 바로 값진 물건들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으니 문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이제 문도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너도 이 집에서 쓸모가 없게 되었으니 나가도록 해라.” 』- <백유경>
★ 문만 지킨 하인의 행동. 그 어리석음 속에서 내 어리석음이 보이지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지요? 아니, 내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그렇다면 난 지금 거울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절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경전 속의 이야기든, 실제 주변 삶의 이야기든, 직접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든 모두 부처님 가르침, ‘經’(경)입니다. 내 모습을 비추어보는 거울, ‘鏡’(경)입니다.
우리는 거울을 보되, 거울은 보지 않습니다. 오직 나를 볼 뿐입니다. 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묵묵히 거울을 들여다 봅니다. 얼굴에 뭐라도 묻어 있지 않나, 머리는 흐트러져 있지 않나, 옷 매무새는 단정한가 등등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닦고 가다듬고 바로잡으며 보다 괜찮아 보이려 애쓰게 됩니다. 그럼, 백유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하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떤가요?
귀한 물건은 다 도둑맞고 문만 지킨 하인. 난 그렇게까지 어리석진 않다구요? 혹, 가장 소중한 걸 제대로 도둑맞고 있으면서도 그러는 줄 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남 어리석다고 비웃고 있을 때, 자신의 어리석음은 보지 못하고 있으니 지혜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하인이 문을 왜 잘 지켜야 하는지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귀중한 재산은 나 몰라라 하고 문만 지킨 하인의 어리석음을 보며 한심해 할 수도 있고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육신을 지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인이 문을 지켜야 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육신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삶은 무의미합니다. 문만 붙들고 지키는 것처럼, 정말 쓸모 없는 일입니다. 이 고깃덩어리가 진짜 ‘나’인 줄 착각하고 애지중지 보살피느라 애쓰다 보니, 탐욕도 생기고 내 맘대로 안되니 초조하고 걱정되고 성질도 부리게 되고 때론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기도 하고… 그러느라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요? 얼마일까요? 참 나! 무량보배를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육신을 지탱하며 사는 이유는? 무량보배, 나의 마음을 닦고 닦아 완성하기 위해서 입니다. 육신에 집착한 까닭에 거추장스런 이 육신을 뒤집어 쓰고 나왔지만, 육신을 보살피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육신을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육신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육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생긴 탐?진?치를 비롯한 온갖 번뇌망상을 버리고 자유롭기 위해서, 진정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좋다는 음식 찾아 먹고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이, 무량보배를 찾는 수행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함이 분명한지? 아니면 오히려 모든 괴로움의 본산인, 이 육신에 대한 집착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이 거울 저 거울에 잘 비추어 봅시다. 잘 먹여 놨더니 내 입이 내 눈이 내 귀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는 대로 시비하고 듣는 대로 흉보느라 나의 귀중한 그 무엇을 도둑맞고 있는 건 아닌지? 지켜보고 또 지켜 봅시다.
사방 팔방에 걸려 있는 거울들! 남의 잘한 이야기, 잘못한 이야기. 내게 안팎으로 다가오는 좋고 나쁜, 이런 저런 다양한 경계들. 마음 닦는 공부를 하는 수행자에겐 내 본래 얼굴에 묻은 탐?진?치를 비추어주는 거울이요,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훌륭한 스승들입니다. 그러나 배우려 하지 않는 자에겐? 그저 캄캄한 절벽일 뿐입니다. 내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한 생각 돌리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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