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내면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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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내면의 여행 - 원은연 2009. 12. 6
처녀 시절, 깊은 산중의 호젓한 암자를 첫 데이트 장소로 정하여 날 이끌고 간 이상한 남자(나에겐
너무나 생소하고 이상하게 보였음)와 결혼하여 30년째 살고 있는 나! 불심깊은 남편과 살며 그저 바라보기
만 했다. 그러나 거부하지 않고 열심히 절에 따라다니긴 했지만 난 방관자였고 무심했다.
한마음선원과 인연이 닿아 18년간 절에 다니면서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친정 장조카가
가톨릭 신부님이고 9명의 형제 자매, 조카들 거의가 가톨릭 신자임이 무관하지는 않았으리라...
반면, 남편은 지극하고 간절히 마음공부를 하고, 날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매일 밤 지치지 않고
성심껏 큰스님 법문을 전하려 애썼다. 그럴수록 눈물까지 흘리는 감상적인 남편이 이상하기만 했다.
냉정히 반박하며 이론적으로 해석하여 때론 격렬한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해가 거듭되며 나에게 조용한 자각이 생기기 시작함을 느낀다. 이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혼자 조용히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큰스님 법문에 감명 받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걸 보며 한편 부럽기도 하고‘난 왜 안 되는 걸까?’ 스스로 반문해 보며, 세월만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나도 한 번 진지하게 다가가볼까’라는 마음이 들던 차에... 3주전 일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는 작은 아들에게서 라식수술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너무나 간단한 수술이고 금방 끝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 마음은 안타깝기만 했다. 당장 달려가 안아주고, 손잡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손길이 필요로 하는 남편과 어린 딸이 있기에 그럴 수 없었는데 갑자기 내 마음속으로부터
‘그래, 마음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지? 그 자리에 꼭 참석하여 내 귀한 아들 눈을 의사의 손을 빌어 내가
같이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수술시간에 맞춰 함께하기로 했는데 막내 점심을 챙기느라 시간을
놓쳤다. 그러나 2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앉아 천수경, 반야심경을 한글로 또 한문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천수경과 반야심경에 ‘눈’에 관한 구절이 너무나도 많았다. 정말 그렇게
많은 구절이 있는 게 맞는지 다시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은 나에게 그렇게 느껴졌다. 입으로
읽었지만 생생하게 마음은 아들 옆에 갔다 왔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되었다. 수술 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난 자신 있게 “엄마가 네 옆에 가 있었는데 알았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수술시간이 미루어져 바로 내가 기도했던 시간에 수술했던 걸 알았다. 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렌즈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식에게 향했던 이 간절한 마음과, 잠깐이었지만 신기한 내면의 여행을 경험하면서 마음공부에 대해서.
‘이런 마음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자그마한 자신감이 생겼다. 수줍은 첫걸음이지만 긴 세월동안
분명 불법과 인연이 있었음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어 날 이 자리에까지 인도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온갖 만물이 깊은 뿌리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이 계절에 나도 더 싶은 내 안으로 들어가 볼까.
그동안 지극한 마음으로 날 지켜봐주고 용기를 주며 내 마음공부 선생 노릇 자처하는 남편과,
신심 없음을 나무라지 않고 포용해 주신 혜지스님께도 지면을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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