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스님 법문 」 거듭 입력 & 실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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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스님 법문 」 거듭 입력 & 실천 !
1. 「 옛날에 어느 성현이 제자들한테 금 한덩어리씩 주면서, “ 이거 가지고 밑천을 삼아 더 늘리든지 어떻게 해 봐라 ” 했거든요. 그 중에 한 사람은 그거 없어질까 봐, 망할까 봐 금덩어리를 장 속에다 꼭 넣어놓고는 꺼내지도 않고, 한 사람은 그걸 가지고 가서 늘려서 금덩어리 몇 개를 만들고, 한 사람은 금덩어리를 가지고 가선 망하고 그랬대요. 그래, 세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제일 괜찮겠어요? 」
큰스님께서 3사람을 각각 어떻게 평하셨나?
1. 금덩어리를 가지고 망한 사람
2. 금덩어리를 더 늘린 사람
3. 금덩어리를 장 속에 넣고 꺼내지도 않는 사람
2. 「 어느 부인이 노상 때리는 남편의 매질을 견디다 못해, 지나가는 스님을 붙들고 살려달라고 사정하였습니다. 그 스님이 말씀하시길 “전생에 당신은 마부고 당신 남편은 당나귀였는데, 당신이 당나귀를 부릴 때 너무 때려서 그 대가로 맞는 건데 뭘 그러냐.”고. 그래도 살려달라고, 이젠 다시 그러지 않겠노라고 하니까 “ 그러면 돗자리를 말아서 당신 때리기 쉬운 데 놓아두어라. 당신이 때린 수효만큼 매를 맞아야 하니까. ” 그래서 돗자리를 똘똘 말아서 놔두고 있으니까 술 먹고 들어온 남편이 한 사나흘 그걸로 때리더니, 한참 자고 일어나서 “ 당신을 내가 왜 때렸지? ” 하더랍니다. 」
스님을 만나기 전, 부인은 남편의 매질을 당하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스님을 만난 후, 부인이 남편의 매질을 당할 땐 어떤 마음이었을까?
남편이 부인을 노상 때린 것은 어떤 마음의 원리 때문인가?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업보 소멸 방법은?
3. ( 신도님 질문 : 조계종 폭력사태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 불교는 저런 것이다. 스님네가 저러니 불교는 믿지 말자. ’ 이런 마음이 났을 것이라 염려됩니다. 큰스님 법문을 듣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상처는 어떻게 아물게 할 수 있을까요? )
「 모든 건 스스로 자기네들 생각하기 나름이죠.
그것을 바라보고, 잘 생각하면 정말 자기네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 수 있겠지만,
그렇게 잘못 생각했다면 즉각적으로 자기가 생각한 대로 자기한테 영향을 미치는 거니까요. 」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잘 생각하는 것인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 생각하는 것인가?
4. 「 난 업보가 많아서 이래.” 이러면 업보가 많은 것이고 “ 난 업보고 뭐고 없다. 내가 없는데 뭐가 있으랴, 내가 공했는데 뭐가 있으랴.” 하면 업보가 붙을 리가 없죠. 」
‘ 내가 없다 ’ ‘ 내가 공했다 ’ 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도리를 믿고 아는 것이 나에게 왜 중요한가?
- 한마음선원 시카고지원 일요법회 Dec. 11. 2011 -
A. “ 조계종 폭력사태에 여러분 마음이 흔들리셨습니까?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서로 부딪치지 않으면 개혁이 되지 않고 계발이 되지 않습니다. 싸우는 걸 보더라도,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지혜를 넓히고 공부를 하는 뜻이니까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두뇌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두뇌의 근본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딪침이 없고 상대가 없으면 우리는 발전을 못합니다.
그러니 ‘ 스님네들이 욕심이 얼마나 많아서 그럴까. 다 때려 죽여야 돼.’ 이러지 마시고 ‘ 그것은 발전의 길이다. ’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 모두를 보고서 우리가 공부하니 그 분들도 역시 스승인 것입니다. 장마가 드는 걸 봐도 스승이요, 꽃이 피는 걸 봐도 스승이요, 스승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일체 만물을 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공부를 하고 지혜가 넓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속에서 잘못 나가느냐 잘 나가느냐 하는 양면의 문제가 있죠. 참답게 물리가 터져서 잘 나갈 수 있는 머리인데도 불구하고 잘못 나가는 것을 악이라고 하죠.
사람도 수없이 바뀌죠. 나쁜 짓만 하는 사람이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고 좋은 일만 하는 사람도 고정되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당해 봐야 그 습성을 놓게 되는 거죠. 그분들도 그렇게 싸우다 보니 ‘아, 이런 욕심을 부려서 이렇게 망신을 당했으니 에이, 이거는 할 짓이 아니로구나.’ 생각했을 겁니다. 싸우는 바람에 단번에 그 습이 딱 떨어져 나갔으니 얼마나 그게 효과적입니까? 하하하...”
B.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면 그것은 앞서 입력된 근거가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근거 없이 나오는 건 하나도 없어요. 근거가 있어서 나왔으니까 나온 자리에다가 관해서, 입력을 해서 그 근거를 말살시키면 그 문제가 소멸되죠. 하나하나 소멸시키다 보면 전체가 다 소멸이 돼요. 그러면 그때는 자유스러워지죠. 점차적으로 자유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신도님더러 그러죠. “ 남편을 원망하지 마라. 너도 전에 그랬잖아. 지금 네가 그렇게 당하는 거를 생각해 보면, 과거를 알 수 있어. 금방 짓고 금방 당할 때는 알지만, 과거 생에 지은 것이 지금 현실에 온 것은 너는 몰라. 너도 남을 그렇게 아프게 했어. 그러니까 네 탓으로 돌려. 그러면 그것이 다 소멸돼. ” 여러분이 이 마음도리를 빨리 배우려면 이유를 붙이지 마세요. 이유를 붙이면 빨리 일심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이것은 일심으로 정진해야 하거든요. 이 소멸시키는 실천은 나오는 데다 되놓는 이 공부밖엔 없어요.
C. 공(空)한 이유는 항상 얘기해 드리죠. 고정됨이 없다. 고정되게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말하는 것도 없고, 만나는 것도 없고, 움죽거리는 것도 없다.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제가 늘 이렇게 말하죠. 때로는 아버지가 되고, 때로는 형이 되고, 때로는 할아버지도 되고, 때로는 동생도 되고 남편도 되고 그러는데, 어떤 거 됐을 때 나라고 할 수 있느냐고. 나라고 할 수가 없죠. 모든 게 다!
그와 같이 고정된 게 없이 찰나찰나 바뀌면서 “ 여보 ” 하면 남편이 되고, 또 금방 “ 아버지 ” 그러면 아버지가 되는 거죠. 그대로 그냥, 누가 해라 말아라 할 것도 없어요. 그게 자유예요. 자유스럽게 아버지 노릇하고, 자유스럽게 남편 노릇하고, 또 자유스럽게 아들 노릇하고 이러는 거죠. 그런데 고정됨이 없기 때문에 ‘ 내가 한 게 없다 ’ ‘ 함이 없이 한다 ’ 이런 뜻이죠.
그러니까 모두 한데 합쳐서 더불어 함이 없이 사는데, 업보가 거기 붙을 리가 없죠. 공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업보가 붙을 리가 없죠. 업력이 주둔하고 있을 수가 없죠. 그러니까 잘한 것도 없고 못한 것도 없다는 얘기예요. 잘한 것도 없고 못한 것도 없는 그 가운데서 자기가 그대로 생각하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게 법이다, 이런 소리예요.
용도에 따라서 물에 가면 바로 주해신이 되고, 산에 가면 주산신이 되고, 또 아프다고 하면 약사보살이 되고, 좋은 데로 못 간다 하면 지장으로 화하고···. 여러분도 그렇게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돌아가거든요. 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왜 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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