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법문 ‘ 지혜롭게 주인공에 굴려 놓아라 ’
본문
----------------- 오늘의 큰스님 법문 ‘ 지혜롭게 주인공에 굴려 놓아라 ’ -----------------
주인공을 믿고 찾으라고 하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덮어놓고 ‘ 주인공만 믿으면 된다더라.’ 하고 그냥 ‘ 너 알아서 해라.’ ‘ 주인공이 해 줘야지.’ ‘ 주인공 해 주시오.’ 이렇게 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봅니다. 절대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마음의 근본과 마음내는 것과 육신이 움직이는 것을 동시에 합쳐서 주인공이라고 하는 겁니다. 주인공이라는 것을 그대로 내놓을 수도 없고, 마음이라는 것을 내놓을 수도 없고, 내가 어떤 걸 했다고 내놓을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인공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팔방미인을 가지고 주인공이라고 하죠. 팔방으로 뛰어도 죽지 않는다는 원리를 가지고 주인공이라고 하죠.
우리가 찰나찰나 화(化)해서 돌아가니까, 찰나찰나 용도에 따라 변해서 애고(哀苦)도 세균성도 영계성도 유전성도 나오죠. 애고라는 것이 고정되게 나오는 게 아니라 때로는 이런 것도 나오고 때로는 저런 것도 나오고 그렇습니다. 사회에서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이런 것이 망쳐질 수도 있고 저런 것이 잘될 수도 있죠. 그런데 ‘ 주인공에다가 이 모든 것을 일임해라.’ 할 때는 상황에 맞게 놔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병고가 오면 ‘ 너밖에 고칠 수 없어.’ 하고 놓는데, 그 놓는 순간에 약사로 화한단 말입니다. 또 내가 법정에 들어설 일이 생겼을 때는 바로 독성, 산신도 되고 관세음도 됩니다. 그렇게 맡겼을 때 찰나찰나 바뀝니다. 그 마음 하나 가지고 주인 노릇을 하는 거죠. 그러니 마음을 어떻게 하면 요량 있고 지혜롭게 냄으로써 문제를 조금도 손색이 없이 타파해 나갈 수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아는 것이 올 때, 이걸 꼭 타파해야 겠다 하는 문제가 내 앞에 닥쳤을 때는 ‘ 이것은 너밖에 못해! ’ 하고 놓을 수 있지만, 내가 가늠을 못할 때, 판단을 못할 때는 ‘ 너밖에 판단해 줄 수 없어! ’ 하고 놔야 됩니다. ‘ 판단해서 해결할 수 있는 거는 너밖에 없어! ’ 하고요. 그러니까 용도가 이것저것 다르게 닥칠 때마다 내 마음은 화해서 자꾸자꾸 용도에 맞게 놔야 되죠? 바꿔서 놔야 되죠. 아버지 노릇할 때엔 자연스럽게 아버지 노릇하고, 남편 노릇할 때는 자연스럽게 남편 노릇하듯이 말입니다. 이걸 가지고 지혜롭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 두뇌에는 아주 지혜로운 본능이 그대로 주어져 있습니다. 수억겁을 거쳐서 경험을 쌓고 진화되고 형성되면서 발전을 해서 인간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혜로움과 진화력과 그 모든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연적으로 스스로 지혜로움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저 병고가 와도 ‘ 너 알아서 해.’ 이런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하죠. 예를 들어, 서류를 딱 주고 ‘ 너는 요것대로 해! ’ 해야 되지, 서류도 주지 않고 일거리도 주지 않고 ‘ 너 알아서 해! ’ 한다면 그게 될 법한 일입니까? 예를 들어 아랫사람에게 심부름을 시키는데도 그렇지 않습니까? “ 뭐뭐뭐뭐 사 가지고 와! ” 이래야 뭐뭐뭐뭐를 사 가지고 오죠. “ 너 알아서 사 가지고 와! ” 한다면 그 사람이 뭐를 해먹을 줄 알고, 입맛이 어떤 줄 알고 사옵니까? 그와 똑같습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이 기묘해서 마음내는 것을 잘 내야 됩니다.
공(空)해서 찰나찰나 화하는 고정됨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정되지 않게 용도에 따라서 다가오는 모든 것을 아주 알맞고 지혜롭게 주인공에다 잘 맡겨 놓고 ‘ 너만이 할 수 있다, 너만이 낫게 할 수 있다, 너만이 이끌어 갈 수 있다, 내가 모르니까 네가 알아서 잘 처리해 줄 수밖에 없다 ··· . ’ 내일 아니, 이따가 먹을 게 없다 하더라도 ‘ 너만이 먹게 할 수 있다. ’ 는 그 믿음이 굳건할 때는 반드시 먹을 게 오는 것입니다. 여북하면 이 도리를 아는 사람은 돌에 세워놔도 산다고 했겠습니까?
- 한마음선원 시카고지원 일요법회 3. 6. 2011 -
----------------------------- 법문 듣기 전, 의문을 가져봅시다! -----------------------------
1. 자생중생들을 다 보살로 화하게 만들어야, 즉 내 몸속에 있는 중생의식들을 다 제도하고 난 뒤에야 자기가 부처가 된다.
● 자생중생들을 다 보살로 화하게 하려면 어떤 노력, 수행과정이 필요한가?
● 내 몸속의 중생의식들 중, 요즘 제도해야 할(다스려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의식들은 어떤 것인가?
2. 사람들은 관상(觀相)이 잘생겼느니, 수상(手相)이 잘생겼느니, 족상(足相)이 잘생겼느니, 심상(心相)이 잘생겼느니 운운한다.
● 이 중 어느 것이 잘생겨야 가장 좋을까? 왜?
3. 어떤 사람이 꿈에 소쿠리 하나를 주웠다고 어느 노승께 말하니, “ 너는 오늘 초대받아서 음식을 잘 먹겠다. ” 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 소리를 듣고 딴 젊은이가 꿈도 꾸지 않았으면서 자기도 꿈에 소쿠리를 얻었다고 해몽을 부탁하니, 노승이 “ 너는 오늘 저녁에 매를 죽도록 맞겠구나. ” 했는데 역시 정말 그렇게 되었다.
● 왜 꾸지도 않은 꿈을 그냥 얘기했을 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맞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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