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을 인연으로 가짜 불자의 가면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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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을 인연으로 가짜 불자의 가면을 벗다 정근성 거사님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한지 벌써 25년! 적지 않은 순간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아 걸어 온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불교가 좋아 그냥 불교라고 말했고, 산사를 찾아 헤매던 시절에는 과연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는 누구이고 부처님은 누구이며, 절은 왜하며 상단은 왜 차리는가? 또 수행은 무엇이고 참선은 무엇인가? 열반은 무엇이고 또 해탈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줄을 이었습니다. 여러 절을 찾아 다녔지만 선지식을 만나 시원한 답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중생은 육도 윤회를 한다고 하면서 또 일체무아라고 하는데 여기에 있는 나는 무엇이며 무아인 내가 어떻게 윤회하며 윤회의 주체가 나라면 나라는 존재는 실존하고 있는데 어떻게 무아일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서 교학관련 서적을 읽어 보기도 하고 불교 관련 교육기관에도 기웃거려도 보았으나, 항상 남는 것은 목마름뿐이었고 더운 여름날의 시원한 냉수 한 그릇은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기차나 버스여행을 할 때 가끔 열성적인(?) 가독교인을 만나 설교를 당할 때면 불교란 무엇이며, 기독교와 비교해서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 점은 무엇이며, 더 좋은 점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도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불자라는 가면만 쓰고 다닌 가짜 불자 격이었습니다.
이런 방황과 고민(?)을 하던 중 시카고에 오게 되었고, 시카고에 있는 절중에서도 마음 수행에 적격인 한마음 선원에 인연이 닫았습니다. 한마음 선원 시카고 지원은 우선 수행력이 높고, 자상하시고, 항상 신도들 곁을 지켜주시는 스님이 계시고, 가족같은 분위기 속에서 지낼 수 있는 도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본원이나 한국내의 어떤 사찰보다도 수행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본원이나 대부분의 국내 큰 사찰에서는 스님을 자주 친견하기가 매우 어렵고 신도들 간에도 친밀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시카고 선원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 선원에 온지 며칠이 지난 뒤에 어느 보살님이 “한마음 요전” 한권을 주시면서 읽어 보라고 하더군요. 그 책을 틈틈이 읽고 읽었습니다. 그리고 일요법회와 각종 법회에도 열심히 참석하여, 대행 큰 스님의 법문과 혜지스님의 설법을 열심히 들으면서, 제 나름 데로는 신행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주인공이라는 말도 이해하게 되었고 주인공에게 관하게도 되었습니다. 취침전과 기상 후 30분간 주인공에게 관하는 것을 하나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도, 깊은 밤 적막 속에서 어두움의 두려움이 몰아 칠 때도, 「주인공 네가 알아서 해」하고 관합니다. 꿈속에서 마구니가 나에게 두려움을 줄 때도 주인공에게 맡기면 이내 곧 그 마구니가 사라집니다. 고민거리가 생겨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주인공에게 관하면 저도 모르게 잠이 듭니다. 이제는 행주좌와어묵동정 주인공에게 관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마음의 평정을 얻고 지난날의 방황과 고민을 크게 떨쳐버리게 되었습니다. 선원이 인연이 되어 불자의 가면을 다소나마 벗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탐·진·치 삼독심에 따라 끊임없이 일어나는 많은 번뇌 속에서, 불같이 일어나는 오욕을 다스리지 못하고, 하찮은 일에도 화를 내고, 어리석게 살아가는 중생임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아직도 익지 않은 땡감에 불과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는 정진을 지속하는 것이 땡감에서 벗어나 달콤한 익은 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반님들의 기대와는 달리 신행담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서 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봄으로써 자신의 신행생활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불자들의 신행 생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신해행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심을 더욱 증장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행하여 「끝이 없는 마음의 계단 없는 계단을 넘어 진정코 마음의 구슬 굴리오리다.」
첫째로 부처에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음을 믿고 항상 부처를 가까이 하고 공양하고 공경할 지이다.
둘째로 법의 큰 이익이 있음을 믿고 항상 모든 바라밀을 수행할 지이다.
셋째로 대행 큰스님의 가르침을 믿고 수행 정진에 매진할 지이다.
넷째로 이타가 자리임을 믿고 항상 선지식을 즐겨 친근히 하여 참다운 수행을 할지이다.
다섯째로 근본 진여를 믿고 진여 법을 즐겨 생각할 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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