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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이야기’ 공부 - 안수정등(岸樹井藤)의 무상(無常)

본문

『황량한 벌판에 한 나그네가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걷고 있는데, 갑자기 웬 미친 코끼리가 나그네를 향해 덮쳐왔다. 나그네는 숨을 곳을 찾아 정신 없이 피해 달아나다가 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얼른 그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코끼리가 얼마나 발광하는지 등나무 위에서도 제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나그네가 가만히 보니 등나무 가지 하나가 아래로 내려가 있는데 그 곳을 보니 빈 우물이 있었다. 급한 나머지 그는 등나무 줄기를 잡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 곳에서 숨어 있으려고 발을 내려보니 그 밑에 커다란 독용이 또아리를 틀고 나그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할 수 없어 등나무 줄기에 매달려 있으면서 발이라도 어딘가에 의지하려고 우물 네 구석을 살펴보니 그 곳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 목숨을 부지할 데라고는 등나무 줄기밖에 없는데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자신이 매달려 있는 가지를 갉아 먹고 있었다. 망연하여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무언가 자신의 얼굴로 똑똑 떨어져 위를 올려다보니 등나무 위에 있던 벌집에서 꿀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그 상황에서도 목이 말라 입을 벌리고 꿀을 받아 먹었다. 그는 단 꿀맛에 정신이 팔려서 독사가 밑에서 기다리는 것도, 등나무 줄기를 끊임없이 갉아먹고 있는 무서운 쥐가 있다는 것도 다 잊어버린 채 순간 순간을 덧없이 보냈다. 그러는 사이 시작된 곳을 알 수 없는 들불이 삽시간에 번져 등나무 밑둥을 태우기 시작했다.』 「비유경」

★ 자, 여기서 나그네는 어떻게 살아 나갈 수 있을까요? 과연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인생 무상을 절절히 느끼게 되는 세밑. 나그네가 처한 절박한 상황의 그림 한 폭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것은 바로 너와 나의 현실 그대로입니다.
나그네는 중생이고, 황량한 벌판은 중생이 번뇌의 긴 세월을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미친 코끼리는 이 세상을 휩쓰는 무상(無常)의 바람이며, 번뇌 속 중생이 무상풍(無常風)에 떠밀려 들어간 빈 우물은 생사의 구렁텅이입니다. 등나무 줄기는 육신의 생명을 뜻하고, 우물 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큰 독용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물 네 구석의 독사들은 육신을 이루고 있는 사대요소(4大; 지수화풍)를 뜻하니, 중생이 육신에 의지해서 살아가려 하나 늙고 병드는 육신은 의지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지요.
또 간신히 붙잡고 있는 생명줄을 갉아 먹고 있는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의 시간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끊어지면 독용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꿀을 받아 먹는 재미로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꿀은 무엇일까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재미, 오욕(五欲;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욕락을 탐하는 우리 마음의 들판은 항상 번뇌의 불길에 휩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악몽 같은 현실 앞에서, 우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그네가 지금 한바탕 꿈을 꾸고 있는 거라면 어떨까요? 깨어나버리면 그만이지요! 천하에 없는 악몽이라도, 깨어나기만 하면 벗어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광야의 나그네는, 즉 우리는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다. 본래는 부처인데 번뇌의 깊은 잠에 빠진 사이, 고해에서 중생노릇 하는 꿈! 그러나 꿈이 꿈인 줄 모르는 이상, 꿈은 엄연한 현실이지요. 고통도 즐거움도 생생한 현실, 고통은 피하고 싶어 몸부림치고 즐거움은 누리지 못해 안타까운 현실 말입니다. 독사를 피하려 아무리 애써도 등나무 줄기를 아무리 열심히 붙들고 있어도 달콤한 꿀을 더 받아 먹고자 아무리 갈구해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있는 격일 뿐인 우물 속의 현실!
어떻게 하면 이 생생한 꿈 속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꿈이 꿈인 줄 아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중생으로 살고 있는 꿈을 꾸고 있음을 자각(自覺)하는 것입니다. ‘중생 꿈’을 아주 오래 꾸고 있을 뿐, 나는 본래 부처임을 믿는 것입니다. 내 머릿속 가슴속을 꽉 채우고 있는 ‘중생이라는 생각’ ‘중생으로 알고 살아온 습성’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정화하는 것입니다. 오직 내면 부처인 ‘한마음 주인공’에 귀의함으로써! 오직 주인공을 믿고 일체를 맡겨 놓음으로써!
먹지 않으면 배고픈 현실. 제대로 옷이라도 걸치지 않으면 추워서 쩔쩔매는 현실. 거스르는 소리 들으면 기분 나쁜 현실. 병들면 서글프고 고통스러운 현실. 모두 꿈인 줄 알면 속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기에, 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습니다. 배고픈 줄 알고 밥 먹을 줄 아는 자, 누구인가? 들을 줄 알고 기분 나쁜 줄 아는 자, 누구인가? … 누구인가? 주인공! 당신이구나, 그러니 당신만이 이끌 수 있어… 이렇게 오매불망 자기 부처(주인공)를 찾는 것이 ‘나’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을 즉각 버리고, 중생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됩니다.
내 앞에 닥친 어떤 현실이라 할지라도, 지나가는 바람입니다. 꿈결처럼 스쳐가는 무상한 바람. 나를 정화하고, 나를 꿈에서 깨어나라고 불며 지나가는 바람이니 그 뜻을 고이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맞서 싸우거나 두려워 피하면, 필경 고통이고 생사윤회의 구렁텅이를 면하기 어려울 터이니!
그런데, 정녕 꿈에서 깨어나고 싶은 마음은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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